토마스 케홀름, 폴 케홀름의 아들

에디터 유다미 포토그래퍼 박순애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차로 약 30분 정도 가면, 외레순 해협 Øresund Strait을 마주한 롱스테드 코스트 Rungsted Coast에 한 주택이 있다. 가구 디자이너 폴 케홀름과 그의 아내이자 건축가인 한네 케홀름이 함께 완성한 공간 ‘빌라 케홀름’이다. 두 사람의 창의적 대화가 건축과 가구를 통해 하나의 형태로 구현된 이곳에는 케홀름 가족의 감각과 추억, 공간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 자연에 대한 경의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현재는 그 흔적 속에 폴 케홀름의 아들 토마스 케홀름이 살고 있다. 좋은 가구를 모아 소개하는 딜러이자, 프리츠한센과 함께 아버지의 디자인 유산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고, 케홀름 부부의 철학이 살아 있는 이 집을 지켜내는 일 또한 자신의 중요한 몫이라 말한다. 이에 스리데이즈 오브 디자인 3Days of Design 같은 주요 이벤트가 열릴 때면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폴 케홀름의 디자인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빌라 케홀름을 찾은 이들은 건축과 가구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느낄 수 있다.. 기사의 도입부가 됩니다.

이 인터뷰는 7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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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케홀름으로 알려진 이 집은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입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삶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가족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집인지 소개해주세요
제가 태어난 1962년에 완성된 집입니다. 제 인생의 시작부터 늘 함께한 공간죠. 잘 알려진 대로 어머니가 건축을 맡았고, 아버지가 가구를 만들었어요. 공간과 빛 그리고 ‘디자인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집 안 곳곳에 담겨 있죠. 바닷가에 자리한 이 집에서의 삶은 언제나 자연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여름날의 맑은 공기, 순간순간 변화하는 하늘과 바다의 색을 바라보던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계절과 시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그 변화 속에서 여전히 생기를 머금고 있어 마치 ‘살아 있는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작업 테이블에 앉아 도면에 몰두하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그 자리가 지금도 아버지를 가장 생생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주변에는 언제나 금속 부품이나 기계 구조물 같은 것이 있었고, 그것들이 아버지에게 영감을 주곤 했어요. 정적이지만 팽팽한 집중이 감도는 공기, 그 고요한 긴장이 지금도 집 안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이 집을 건축하던 시기의 상황과 두 분이 함께 완성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당시 두 분은 코펜하겐 미술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건축학과, 아버지는 가구디자인과 교수로 일하면서 함께 창의적인 대화를 나누셨죠. 서로의 생각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작업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시기에 가장 상징적인 작품 여럿을 만들었는데, 이 집을 짓는 동안 진행한 작업이 꽤 많았어요. 건축과 가구가 자연스럽게 맞물려 하나의 결과로 완성된 셈입니다. 어머니는 공간과 빛, 비례를 중시했고, 아버지는 형태와 재료, 디테일한 요소에 비중을 두었죠. 그렇기에 이 집은 두 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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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설계할 때 그들이 공유한 철학이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어머니는 집이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을 향해 열려 있고 고요하며, 빛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공간을 바라셨죠. 그래서 건물의 비례를 세심하게 조정해 실내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부지에 한때 설치되어 있던 퍼걸러(pergola 정원이나 테라스 등에 덩굴을 올리기 위해 세운 기둥과 지붕 구조물)도 건축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 구조물이 가진 반복적인 리듬을 이 집에 그대로 녹여낸 것이죠. 벽과 문에는 칼마르 소나무를 사용해 따뜻함을 더했고, 벽돌과 큰 창을 조합해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가구도 같은 개념 아래 놓여 있습니다. 낮고 단순하며 재료의 정직함이 드러나는 형태로, 빛과 공기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고려했어요. 두 분은 이렇게 균형을 중요시 하는 가운데, 구조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두 사람의 건축과 가구는 일종의 창조적 대화의 산물로 여겨집니다. 당신은 폴 케홀름의 가구가 이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두 분의 가구와 건축은 처음부터 함께 탄생했어요.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었죠. 아버지는 이 집을 위해 대부분의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PK9 의자, PK54 테이블, PK33 스툴 등이 대표적이죠. 지금도 프리츠한센에서 생산되고 있어요. 그 가구들은 어머니의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낮고 정제된 형태로 빛과 움직임이 머물 자리를 남기죠. 특히 식사 공간은 두 분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예요. PK54 테이블과 PK9의자가 이 집의 건축적 비례와 명료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죠.
평소 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PK54 옆에서 지냅니다. 이 자리에서는 집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창 너머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죠. 부모님이 함께 만들어낸 공간의 비례와 빛, 고요한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장소예요. 이곳에 앉아 있으면 하루의 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날씨가 어떻게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시간을 잠시 멈추고, 세월의 흐름을 바라보게 되는 자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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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22 의자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나요?
PK22는 말그대로 ‘쉬는 의자’, 이지 체어예요. 가볍고 단순하며 편안하죠. 하나만 두어도 충분하지만, 낮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2개를 마주 놓아도 좋습니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죠. 아버지는 이 의자가 공간을 지배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좌판을 낮게 설계해 앉았을 때 주변이 더 넓고 열린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조용한 순간에 잘 어울리는 의자예요.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그저 집의 분위기를 느끼며 앉아 있어도 더할 나위 없는 자리죠.
잉고 마우러 Ingo Maurer의 조명, 찰스 & 레이 임스 Charles & Ray Eames의 의자, 폴 헤닝센 Poul Henningsen의 램프 등 다양한 디자이너의 작품이 케홀름의 가구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네요.
부모님은 언제나 좋은 디자인에 열린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이 오로지 아버지의 작품만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예를 들어 거실의 책장은 모겐스 코크 Mogens Koch의 디자인인데, 두 분이 함께 선택했습니다. 두 분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늘 같았어요. 재료의 정직함, 형태의 명료함 그리고 공간 안에서 조용히 존재하는 힘이었습니다. 잉고 마우러의 조명은 제가 나중에 직접 추가한 것입니다. 빛과 반사를 다루는 방식이 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바다와 맞닿아 있는 환경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이곳에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이 집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풍경이죠. 어머니는 건축이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에 녹아들길 바랐어요. 큰 창문들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햇빛과 공기가 그대로 집 안으로 스며듭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고, 날씨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실내로 들어온 햇살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자리를 옮기죠. 자연과의 연결이야말로 이 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삶은 아주 느린 리듬으로 흘러갑니다. 아침이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실내로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수영을 하거나 멀리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망원경으로 구경하곤 해요. 바다 위로 날씨가 바뀌는 것도 관찰할 수 있죠. 그런 풍경을 바라보면 시간이 흘러간다는 감각이 새삼 선명해집니다. 한마디로 이 집은 시간에 주목하게 만드는 공간이에요.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 그저 주변의 변화를 느끼게 하죠.
이 집에 담긴 부모님의 디자인 철학 가운데 지금도 가장 깊이 공감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건축과 가구를 하나의 개념으로 엮어냈다는 점입니다. 공간, 재료, 빛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죠. 그 대화가 집 안 곳곳에 살아 있어요. 어머니의 건축은 여유와 개방감을 주었고, 아버지의 가구는 집중과 정밀함을 더했죠. 그 균형이야말로 두 분의 유산이에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남겼습니다. 지금 이 집은 보호 건물로 지정되어 있어 큰 변화는 불가능해요. 저는 그게 오히려 옳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현대적이고,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케홀름의 디자인을 포함한 가구 숍을 운영하고 있죠. 가구업계에 발을 디딘 것은 가족들의 영향 때문인가요?
저는 원래 가구 제작을 배웠고, 좋은 제품만 다루는 멋진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가구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매장을 열었고, 1992년쯤 프리츠한센의 딜러가 되었습니다. 친구가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PK55 테이블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당시 저는 다른 회사 제품만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프리츠한센에 직접 연락해 “내가 매장을 열면 당신들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을 들은 후 바로 딜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 매장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죠. 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약 10년 전부터는 누나 크리스티네까지 프리츠한센과의 미팅에 참여하며, 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구에 대한 이야기와 철학, 그리고 질문하는 방식을 배워나갔죠. 지금은 저와 누나의 자녀들까지 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우리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요.



폴 케홀름 디자인 유산을 이어가는 데 앞으로도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진정성과 장인 정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아버지의 작업은 유행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었어요. 정확함, 재료의 솔직함, 그리고 균형에 관한 것이었죠. 그 가치는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디자인이 당시와 같은 세심함과 정성으로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의 철학, 즉 명료함과 단순함, 진실성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가장 애정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의자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하나만 고르기란 어렵습니다. 날마다 다르거든요. 어떤 날은 PK9가, 또 어떤 날은 PK11이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PK9는 조각적인 힘을, PK11은 정제된 정밀함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두 작품 모두 아버지가 추구하던 균형 감각을 완벽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Magazine C PK22 표지

PK22

1956년 덴마크 디자이너 폴 케홀름이 선보인 PK22는 간결하고 명료합니다. 재료와 구조가 곧 형태가 되도록 설계해 스틸 프레임부터 가죽, 나사 등 의자의 모든 요소가 기능적으로 작동하며 조형적 아이덴티티를 만듭니다. 덴마크 전통 수공예의 정밀함을 현대 조형 언어로 확장한 폴 케홀름의 디자인 철학을 대표하는 작업으로, 어느 공간에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동시에 조용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의자입니다.